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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올해로 21살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착한 아이'였던 그녀는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곁을 떠나려하지 않던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당신을 제 가슴에서 밀어내었다. 가슴에서 밀려난 당신의 위치는 한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더이상 당신은 그녀의 어머니도 아니었고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렇게 처음이 비틀어졌다. 왜 자신이 당신을 미워하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당신의 위치를 끌어내어 밑바닥으로 추락시켰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은 당신을 미워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 미움은 곧 가족 전체로 번져나갔다. 그녀는 자라나면서 가족을 못참아했다.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타인이 되고 싶어했다. 후에 '죽음'이라는 형태로 바뀌면서 자살을 꿈꾸기 시작했다. 가족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것이 '죽음'뿐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항상 '죽음'을 꿈꿨다. 목을 매든, 손목을 긋든, 백합향에 취해 영원의 잠에 빠져들든, 어떻게든 죽고싶어했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타난 타인의 형태였으나 그녀는 그 것을 꿈꿨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기에 가족을 벗어나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곁에 머물렀다. '죽음'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신뢰하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사라졌다. 친구들을 사귀면서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았다. 당장 죽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우유부단하고 밝은 아이로 돌아가 '삶'을 원하게 되었다. 죽음은 가슴 가장 밑바닥에 스며들어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다시 원하는 날이 올 때까지. 그녀는 그들과의 만남에서 소소한 행복과 가족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집착'으로 변해 그들과의 관계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에 민감해졌다. 스스로 밀어내던 때와는 다르게 그들을 받아들였다. 3년 반이란 세월동안, 그들에게 '진짜 자신의 마음'을 준 적은 없지만 그들을 가족보다도 신뢰하고 좋아했다.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그들 중 하나가 그녀를 배신한 것이다. 웃는 얼굴과 순진한 얼굴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면을 쓴 채 그녀를 잘근잘근 밟아왔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신뢰를 잃었다. 모함과 거짓증거로 그녀를 무너뜨리는 동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들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렸다.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더이상 좋아할 것도 없었고 집착해야할 것들-집착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모두 제 가슴에서 밀어내고 곁에서 밀어내었다. 다시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차라리 혼자가 나았다. '혼자'서는 외로워도 또다시 상처받을 일은 없으니까. 당신은 그런 그녀를 조롱하진 않았지만 여러가지 것에서 부딪쳐왔다. 은연 중에 '네까짓게 뭘할줄 알겠어?'라면서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녀는 '착한 아이'였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을 증오했다. 빨리 죽어버리라고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라고 시체가 되어 썩어문드러지라고 해서는 안될 저주를 퍼부었다. 저주를 퍼붓고 증오를 분출하는 순간동안 그녀는 타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증오와 미움은 더더욱 커져갔다. 광기도 거세졌다. 미쳐갔다. 원래부터 미쳐있던 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신을 증오하고 가족을 못참아했는지 모른다. 타인에게 제자신의 마음을 주기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분노하는 순간만큼은 그녀는 타인이 되었다.
버스에 오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왜그렇게 당신의 말에 상처받고 저주를 퍼부었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은 패배자라는 생각. 자존심이 강하던 시절은 사라지고 패배감이 남았다. '어째서?' 역시 언제부터 어떻게 형성된 건지 알 수 없다. 그 시절의 그녀는 승리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누군가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고 져도 왜 졌는가에 대해 변명하기를 싫어했다. 어느순간 그런 자존심과 승부욕은 사라지고 패배감만이 남아 마음을 짓눌렀다. 할퀴고 짓이기고 갈기갈기 조각내고. 그 짙은 패배감이 짓눌러오는 무게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눈물이 차오르던 눈에 독기가 돌았다. 마지막이다. 무언가를 보여주자. 이젠 그런 패배감도 무시도 느끼기 싫었다. 더구나 당신의 그 네까짓게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듣기 싫었다. 당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해보자. 21년이란 세월의 반이 허무함과 공허함으로 채워졌다면, 이젠 포만감으로 채울 차례다. 그녀는 더이상 패배감에 짓눌릴 수만은 없었다. 이제는 그것들을 제 자신에게 몰아낼 차례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인생은 아직 길다. 그것들을 몰아내기에 시간은 많았다.
버스에서 문득 생각난 소재랄까.
'그녀'와 어째선지 동질감을 느껴버렸다.
여기에서 좀 더 이어나가야하지만, 그러다간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으니 이쯤에서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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