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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제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 타오르는 오일링의 불꽃만이 그의 감각을 일깨웠다. 흐렸던 시선이 되돌아오고 느려진 시공간 감각도 돌아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모든 것이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이게 무슨일이란 말인가. 덫에 갇혀 꼼짝도 못하게 된 그는 숨을 삼켰다.
생경한 감각이 천천히 몸을 감싸안았다. 머리를 어지럽히고 몸을 아프게 만드는 이상한 감각에 숨을 흘려쉬었다. 그 찌릿하면서도 쓰디쓴 감각이 등을 훑고 가슴을 훑었다. 인간과는 달리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몸에 통증이 돌고 있었다.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는 중이긴해도 아직 인간의 감각까지는 몰랐다. 그것은 신께서도 허락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아직 인간이었을 적의, 그러니까 자신에게 육신을 헌납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살아온 루크의 기억에서 찾아낸 고통과 닮아있는 감각에 몸을 떨었다. 루크가 미친놈에게 쫓겨 칼에 찔렸을 때의 느낌은 기묘한 것이었다. 차가운 무기질의 금속이 배를 통과했다가 빠져나가고, 생살이 그 날카로움에 찢기고, 피를 흘리고...그리고 정말 죽을만큼 아팠다. 통증에 신음하며 있을 때 고통을 가르는듯한 느낌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오 이런이런, 금방 걸려들 줄은 몰랐는데! 이거 굉장히 의외야!
연신 의외로군 놀라워를 외치며 감탄하던 인물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분나쁘게 웃으며 걸어나온 남자는 고작해봐야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검은 양복을 입은, 창백한 얼굴이 아름다운 사내다. 아름답다못해 무언의 신성함과 고귀함까지 느껴졌다. 그 속은 더럽고 추악한 죄악 덩어리였지만 말이다. 검붉은빛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반들하게 빛났다.
베리얼.
그는 어둠 속의 인물을 노려보았다. 설마하니 그가 자신에게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구약성서시절부터 인간을 괴롭히던 사탄의 아들. 조만간 만나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그것이 조금 기분나빴다. 불길한 빛이 달을 감싸고 하늘을 뒤덮었다. 짙은 구름이 몰려와 곧장 달을 삼키고 하늘을 눈을 막았다. 베리얼은 낄낄낄 웃었다. 경첩의 삐꺽거림과도 닮은 웃음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품에서 꺼낸 붉은 장미를, 그는 비척비척 걸어와 칼엘이 갇힌 오일링 안으로 던져넣었다.
너에 대한 나의 선물이야.
칼엘은 핏빛의 꽃을 본척만척했다. 그의 무신경한 태도에 상처받았다는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너무해 너를 위한 내 마음인데 따위를 지껄이던 베리얼은 또다시 낄낄낄 웃었다. 그는 갑자기 흐음, 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것은 그가 무언가를 제안하거나, 물어볼 때 짓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그러고보니 너는 기억해?
남자는 사탄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니므림엘.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진심으로 기분나빠하는 표정이다.
기억나는 모양이군!
베리얼은 기쁘다는듯이 웃었다.
그의 이름은 이제 나메르야. 스스로 아버지에게서 받은 이름을 버렸거든.
재미있어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타락해버린 천사가 아버지께서 내리신 이름을 멋대로 바꿔버리는 것은 아버지를 욕되게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원래 받은 이름을 가지고 악마로 활동하는 일도 충분히 욕되게하는 짓이지만, 이름 개명 또한 그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는 방법이었다.
사실 너를 붙잡게되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그에게 약속을 해버렸거든. 그래서 너와 그를 만나게 해줄 생각이야. 어때? 싫어?
베리얼은 그의 표정이 불쾌감으로 가득 차던말던 두 손가락을 부딪쳐 소리를 내었다. 따악- 따악- 그 소리를 멜로디삼아 베리얼은 흥얼거렸다.
만나기 싫은데 모양인데 만나야해. 난 그 녀석이 마음에 들거든.
제멋대로다. 하긴 악마에게 뭘 바라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남자는 그럴거면 애초에 싫은지 왜 물어본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베리얼은 깊은 어둠이 녹아든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동안 아름다운 만남의 장을 마련해주지따위의 소리를 지껄이고서. 어둠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베리얼은 사라져버렸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묘한 바람소리가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조금 후에 나타난 인물은 나메르였다. 그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얼굴로 웃어보였다. 예의 그 탐욕스러운 눈동자로가 남자를 쳐다보았다.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 한참이나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기분나쁜 웃음을 흘렸다. 타락천사의 머릿속에서 어떤 상상이 이루어지고 있을지 뻔히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기분나쁜 상상따위 그만두라고 하면 관심가져줘서 고맙다는 개소리나 지껄일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저 조용히 노려만 보았다.
이게 얼마만 인거죠? 250년? 300년?
300년. 아마도 그 쯤일 것이다. 300년 전에 니므림엘 아니, 나메르는 '욕정'이란 죄목을 안고서 타락했다. 그때 나메르의 상관이었던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수 십 수 만의 형제를 상대로 욕정을 품고, 머릿속으로만 실현해오던 그 죄악을 행하려 했을 때, 그리고 그 상황이 연출되려 했을 때, 보다못한 주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벼락을 내려 천국에서 밀어내었다. 지상으로 떨어진 나메르는 곧장 악마들의 주둔지로 떨어졌고 그 후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타락한 천사따위가 판데모니움으로 추락해버리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일이지만, 그는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그 때의 그 일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있었기에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천국에서 떨어져 나온 뒤에, 베리얼을 따르리라 마음먹었어요.
뱀같은 눈동자가 욕망의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구름에게 집어삼켜졌던 달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지러진 빛이 부서졌다. 달의 잔상이 둘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는 내가 가진 '이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더라고요. 어젠 엔젤즈에 속한 천사 하날 먹었죠. 맛있었어요. 처녀같은 반응도 괜찮았고. 도통 가만히 있을 줄을 몰라서 심하게 대해버렸지만요.
천진하게 웃으며 어린아이같이 말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행동과 말투 모든 것이 거슬렸다.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역겨움이 치솟았다. 어제 천사 하나가 엉망이 되어 천국으로 역소환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말 그대로 정상이 아니었다고했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유에서 무로 지워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몇번이나 정화했지만, 그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었으므로. 제발 자신을 없애달라고 애원하는 울부짖음에 동료들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근데 그 녀석을 먹을 때도 당신 생각이 나더라고요. 천사였을 때부터 정말 좋아해서 그런가? 당신도 알고 있었잖아요?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았다.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천사가 가지는 사랑의 감정이 죄는 아니지만, 그 것이 아버지를 향하지 않고 다른 것에 향하여, 자유의지를 가지게 된다면, 그로써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죄가 되는것이었다. 아버지가 아닌 자신을 향한 나메르의 그런 묘한 감정을,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종류의 것이기도 했다. 그때 그는 나메르의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조금은 이해할지도 모르지만, 역시나 그것은 죄악인 것이다. 나메르는 순수하게 웃었다.
남자는 어째선지 그 순수한 웃음이 두려워졌다.
학교에서 강의듣다가 급연성.
사탄보다는 이 빌어먹을 변태 천사가 고팠습니다.
요즘 베리얼에게 빠져있더니 뭐 이런 놈이 내 머릿속에서 나왔냐며...<
나중에 설정이 올라가겠지만, 역시나 저런 이름의 타락천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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