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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어두웠다.
구름 뒤로 숨어있던 달이 어느새 고개를 내밀고 지상을 내려다 보고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빛의 조각만이 길을 비추고있다. 불길한 검붉은 빛으로 물든 하늘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하다. 푸른빛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한 성당이다. 오래 전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 그 곳은 썩어문드려져 있었다. 곧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주아버지의 집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엉망이다. 과거에 불탔던 모양인지, 하얀색이었을 예수와 천사와 마리아상은 반쯤 불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불에 타버려 자연스럽게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어떤 이유에 의해 성당은 버려진 채 다시 지어짓지 않았을 것이다. 소리없이 발걸음을 옮겨 성당 안으로 들어선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퀴퀴한 냄새와 지워지지않은 재의 냄새가 한데 섞여 묘한 현기증을 일으켰다. 달빛에 반사된 먼지들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어깨와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오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유리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갖가지 색으로 부서져내렸다.
하늘에 계신 주 아버지여...
제대에 팔을 받친 여인이 기도문을 왼다. 창백한 하얀 피부와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말갛게 빛났다. 커다랗게 부풀어오른 배가 하얀 원피스에 가려져 불룩히 솟아있다. 임신 중인 여인은 맨발이었고, 그 발은 상처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그 곳에 가만히 멈춰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복숭아색의 입술은 여전히 기도문을 외울 따름이다. 간절하고 안타까운 음성이었다. 그는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다 여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여인은 무의식처럼 반복했다.
The womb is a child of the Satan's baby. You take the baby, please, please.
그녀는 울고 있었다. 맑은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대에 그녀의 눈물들이 떨어져 자욱을 남겼다. 건조한 시선으로 여인을 바라보던 그는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여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던 그는 찌릇한 통증을 가슴에서 느꼈다. 심장 한 부근이 싸하고, 아파왔다. 또 뜨거웠다. 그는 자신이 왜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찌릿한 고통은 여전히 잔재처럼 가슴 밑바닥에 내려앉았다. 여인은 간절하게 빌고 또 빈다. 자신의 뱃속에 든 아이를 거둬가 달라고 기도한다. 뱃속의 아기는 사탄의 자식이라 죽여도 죽지않는다. 저주받은 씨앗은 어미가 죽어야 따라죽는다. 남자는 머릿속이, 마음이 복잡했다. 사탄의 자식은 죽어야할 씨앗이다. 그러나 여인은? 그녀는 단지 그 씨앗을 잉태한 운이 나쁜 여인일 뿐이다. 남자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의 한숨이 그저 의미없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것은 한 여인을 향한 무언의 안타까움이리라. 그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몰랐다.
I came here to help.
읖조리는듯한 낮은 음성에 여인은 그제서야 기도를 멈추었다. 얼굴이 눈물로 젖어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에게로 달빛이 쏟아져내렸다. 등뒤로 거대한 날개 그림자가 비춰졌다. 여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I'm an angel of the Lord.
남자는 차분하게 말했다.
Thank God. Thank you for praying.
여인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눈가가 빨갛다.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젖은 녹빛의 눈동자가 눈물로 반들해졌다. 초췌하지만 아름다운 얼굴이다. 남자는 여인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었다. 아버지는 잔인한 운명을 이 불쌍한 여인에게 안겨주셨습니다. 곧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손이 멈칫했다. 잠시 망설인다.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껏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말하기가 두려워졌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고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죄악일지라도 남자는 그러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은 여인에게 사실을 고해야만 한다. 그 자신이 목숨을 끊지않는 한 아기도 죽지 않으리라는 진실을. 푸른빛의 눈동자가 가만히 여인의 녹빛 눈동자를 향했다. 한숨을 내쉰 뒤에, 입술을 움직였다.
If you die, the baby will not die. The way you do?
그녀의 얼굴은 충격을 받은듯 살며시 굳어졌다. 뱃속에 잉태된 사탄의 아기를 거두어가달라 기도했는데 제 자신의 목숨도 포기해야한다니, 그 상황에서 충격을 받지 않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여인은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아 남자의 손을 그러쥐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남자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물었다.
Hope you are praying, as you are dying to kill the baby, or the baby to give birth to live?
그녀는 마음을 정한듯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 아기가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가 정화가 된다면 자신의 목숨은 아깝지않다, 고 여인은 소리없이 말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자 역시 그녀처럼 한결 편해진 기분을 느꼈다. 느껴졌던 통증도 잦아있었다. 이마에 대고 있던 엄지로 성호를 긋는다. 남자는 두 손가락을 모아 그녀의 이마에 가만히 대었다.
The Lord will save your soul.
그의 말을 끝으로, 여인은 편안한 감각이 자신의 몸을 감싸안는것을 느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몸을 지배했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동안 끌어안고있던 두려움과 걱정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남자의 등 뒤에서 새하얗고 눈부신 빛을 보았다. 그 빛은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 아버지의 인자한 미소를 닮아 있었다. 그녀는 미소지었다. 먼저 천국으로 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그녀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아까와는 다른 안도의 눈물이다.
Thank you.
그녀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남자는 여인의 몸을 안아들어 제대에 눕혔다. 여인의 생명이 다하자 아기의 숨도 곧장 끊어졌다. 그 작은 심장소리가 멈추었을 때, 그는 비로소 벽에 매달린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한 생명의 희생으로 적그리스도의 탄생을 막았다.
사탄 등장시켰다가는 판타스틱한 전투장면을 연출해야하기에 천사만 등장.
역시 토막글이기에 내용은 저번 것과 다음에 올라올 것과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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